책소개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용감한 사람들≫은 그의 동료 작가인 산체스 페를로시오(Sánchez Ferlosio)의 ≪하라마 강≫과 함께 1950년대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소설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 스페인의 어려운 사회상을 독자들에게 알려 주는 사회소설의 범주에 드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거의 모든 비평가 사이에서 전후 스페인 현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적 기법 도입, 객관주의 시각, 새로운 소설 기법 적용 그리고 현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등이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렇다고 예전의 전통적인 소설 기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갈도스나 클라린 그리고 바로하 등 전 세대 작가들의 영향도 남아 있다. 하지만 19세기 스페인의 대표 작가인 갈도스가 부르주아 계층에 관심을 두었다면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서민 계층에 관심을 두었고, 갈도스가 개개인의 심리 분석에 치중했다면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서민 사회계층의 고충 분석에 치중했다. 이것은 전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다.
이렇듯 서민 계층의 인물들을 대변하려는 시도는, 19세기 작가들이 등장인물들의 내면세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지적 화자를 사용한 반면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실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짧은 대화를 자주 사용해 등장인물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 주고, 화자의 등장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독자는 작가 혹은 화자의 의향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용감한 사람들≫의 주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의사와 돈 프루덴시오가 그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빼고는 다른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삶의 고통이 존재하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주인공들의 영웅적인 삶보다는 여러 등장인물의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진정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했다.
≪용감한 사람들≫은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Asturias) 주의 경계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ón) 주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차례의 제목은 없고 세 개의 별표로 구분되는 42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시간적 배경은 무더운 8월의 14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다. 직접적인 시간을 언급하거나(예컨대 “거의 네 시가 되었다”) 자연적인 시간의 변화로(예컨대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일상생활의 진행으로도(예컨대 “평일과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일하러 갔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 준다. 동시간적 상황 표현은 작품의 초반부터 등장한다. 의사가 페페를 도와 자동차 수리를 하는 장면과 안톤이 낮잠에서 일어나는 장면은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작가는 이 두 개의 상황을 번갈아 가며 묘사를 하다가 안톤과 이들 간 대화로 마무리한다.
객관주의의 영향은 화자를 통해서도 그 변화를 인지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를 들려주는 화자, 즉 ‘telling’에서 이야기를 보여 주는 화자, 즉 ‘showing’으로의 변환이다. 이러한 변환뿐만 아니라 아예 연결어가 생략이 되어 등장인물의 대화만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화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가식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독자는 등장인물의 성격, 그의 내면세계 혹은 제3자의 성향까지도 대화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본 작품도 대화 부분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공간 배경의 축소 또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카스티야 레온의 조그만 마을이 배경이다. 단 두 번의 경우만 이 마을을 벗어난 곳이 배경이 된다. 하나는 의사가 산으로 가서, 폐병에 걸린 목동을 치료하는 부분과 돈 프루덴시오가 도시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부분이다. 나머지 이야기 전개는 모두 이 조그만 마을에서 벌어진다. 이 소설의 공간 배경인 마을은 페르난데스 산토스 부모의 고향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객관주의 소설의 공간 대부분은 작가가 상상한 공간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는 공간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다른 동료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이 작품에서 사회적 문제를 대두시킨다. 전쟁 후 피폐해진 농촌의 삶, 이런 삶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으로 페페처럼 도시로 가는 이주자를 볼 수 있다. 남자들과 동일한 생산노동에 시달리지만 일요일마저 집안일로 내몰리는 여자들의 비극적 운명, 이에 대비돼 마을 지주인 돈 프루덴시오는 평생 일도 하지 않았지만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역설적인 면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다.
200자평
스페인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가 1954년에 출간한 첫 소설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 어려운 사회상을 보여 주는 사회소설의 범주에 드는 작품이다. 영화적 기법 도입, 객관주의 시각, 현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등이 나타나 거의 모든 비평가 사이에서 전후 스페인 현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자들은 당시 스페인의 피폐한 사회상과 더불어 계급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50퍼센트 정도 발췌했다.
지은이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1926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가 열 살 때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자 마드리드 근교 세고비아로 잠시 이주해 살았다. 몇 년 후에 다시 마드리드로 가족이 이사했지만,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운한 청소년기를 맞는다. 마드리드 국립대 인문학부에 입학하지만 학업을 마치지 못한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많은 지면을 통해 자신은 동료들과 대화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이렇듯 그의 문학적 동지들인 알데코아, 산체스 페를로시오, 프라일레, 사스트레, 마르틴 가이테 등은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의 작품도 그의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청소년기에 그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던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영화 연구소’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며 영화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도 한다.
그의 첫 작품인 ≪용감한 사람들≫은 <아테네오>라는 잡지에 연재가 되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54년에 카스탈리아 출판사에서 출간하면서, 스페인의 중요 문학상인 나달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다. 이후 그의 단편소설집인 ≪까까머리≫와 소설 ≪성자들의 남자≫가 각각 스페인 비평상을 받았고, ≪사건 보고서≫로 나달상의 주인이 되었으며, ≪이름 없는 여인≫으로 스페인한림원장상 그리고 ≪위기의 여인≫으로 플라네타상을 수상한다.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초기 작품인 ≪용감한 사람들≫, ≪화롯가에서≫ 그리고 ≪미로≫ 등에서는 사회적 문제점을 고발하는 신사실주의 경향의 작품들을 소개했고, 이후로는 ≪성자들의 남자≫와 ≪사건 보고서≫에서 보듯이 실존주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이름 없는 여인≫과 ≪외벽≫은 역사소설로서, 작가는 단순히 배경을 과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고증적 검토를 거쳐 그 시대의 언어를 되살려 독자에게 소개했다. 또한 4편의 단편집은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소설과 소설을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단편집에서 다루어진 주제나 소설 기법들은 그의 다음 소설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또한 페르난데스 산토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시 카페 ‘히혼’은 많은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장소였는데, 페르난데스 산토스도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그는 사업적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 또한 나중에 그의 문학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탈리아 신사실주의 영화감독들이 그러했듯이 스페인의 현실을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그는 스페인 이곳저곳을 걸어서 탐방하게 된다. <그레코>라는 작품으로 발렌시아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고, 화가 고야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스페인 1800>은 영화비평상을 수상한다.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면서 그는 영화 평론가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페르난데스 산토스 연구자 중의 한 명인 콘차 알보르그(Concha Alborg)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녀는 페르난데스 산토스가 여러 문학상을 탔는데도 그의 작품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못 얻는 것과 관련해 “아마도 많은 독자는 영화 평론가로만 기억을 하고, 작가로는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30년에 이르는 작품 활동은 1987년 ≪사랑과 고독의 발라드≫를 발표하며 막을 내리지만, 1982년 겪은 뇌출혈 이후로는 문학성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페르난데스 산토스는 1988년 지병으로 생애를 마감한다.
옮긴이
김선웅은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의 ‘외국인을 위한 스페인 고급 문화 과정’을 수료하고, 동 대학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학사 과정을 거친 뒤에 스페인 현대문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헤수스 페르난데스 산토스의 신사실주의 소설≫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선문대학교와 덕성여대에서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화 관련 강의를 했고, 현재는 대구 스페인 문화원 부원장으로 활동하며, 대구가톨릭대학교와 경북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이 2006년 스페인 페세(PEXE)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스페인 소개 책인 ≪에스파냐−열정과 자유분방함이 빚은 예술 혼≫이 2009년에 출간되었다. 다수의 페르난데스 산토스 관련 논문과 18세기 후반의 시인인 멜렌데스 발데스의 시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점차 늘어가는 스페인어의 관심 추세에 발맞추어 스페인어 능력 시험인 DELE 시험에 대한 연구 논문도 발표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용감한 사람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새벽녘에 찬바람이 마을에 불어왔다. 강은 물이 불어 빠르게 흘러갔고, 산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발타사르는 말에 큰 광주리를 매달고 마을 아래 밭으로 거름을 주러 갔고, 알프레도는 강 하류에서 그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 몇몇이 선술집 앞에서 페페를 배웅하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갔다 나와 페페에게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마놀로와 그의 아내만이 자동차 뒷좌석에 짐을 옮겨 놓고 있었다. 드디어 자동차에 시동이 걸렸고, 모두 뒤로 물러났다. 이사벨은 혼자 남아 마놀로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의사는 발코니로 나갔다. 의자 하나를 놓고 앉으며 발아래 펼쳐진 마을을, 텅 빈 교회, 대장간 그리고 강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 세 명이 늦은 여름에 다리 밑에서 헤엄을 즐기고 있었다.